태묘와 사직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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작성일 23-10-14 03:01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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고려의 궁궐은 몽골 침입을 포함하여 큰 화재만 해도 4번 이상이었을 뿐만 아니라 공민왕대 이후로는 제대로 중건되지도 못했기 때문일것이다 한편 『고려사』의 기록에서 가장 많이 확인할 수 있는 명칭은 ‘본궐(本闕)’이며, 조선시대 이후로는 ‘본대궐(本大闕)’이라고 많이 일컬어 졌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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태묘와 사직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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조선의 궁궐 이름이 경복궁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. 그러나 고려 궁궐의 이름에 대하여는 잘 알지 못한다.
태묘와사직[1]1
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. 그렇다면 中國의 당·송·원나라등의 수도에서 궁궐의 이름이 따로 없이 ‘대내(大內)’라고 불리거나 황성이라고 불리는 것처럼, 천자국을 자처했던 고려사람들 또한 궁궐의 이름을 따로 만들지 아니한 것 같다. 그러나 이러한 이름은 너무 일반적이어서 이름은 아닌 것 같다. 흔히 고려 궁궐의 이름으로 알고 있는 만월대(滿月臺)나 망월대(望月臺)는 고려 궁궐이 폐허로 변해버린 조선시대 14, 15세기에 붙여진 것이다.